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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의 집값은 왜 안정적인가, 그리고 서울은 왜 불가능해졌는가

  • 중앙 집중식 공급 정책과 규제 완화: 도쿄는 주택 건축 권한을 중앙 정부로 이관하고 법적 요건만 맞추면 무조건 허가하는 ‘당연한 권리(As-of-right)’ 원칙을 통해 끊임없이 주택을 공급하는 반면, 서울은 그린벨트와 지자체의 복잡한 규제로 인해 인위적인 공급 부족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 주택을 바라보는 인식의 차이: 일본은 집을 시간이 지나면 가치가 하락하는 ‘소모품(ex. 자동차)’으로 간주하여 재개발에 관대하지만, 한국은 가계 자산의 75%가 부동산에 묶여 있는 ‘투자 자산(주식)’으로 취급하기 때문에 집값 하락이 정치적·경제적으로 불가능한 구조에 빠져 있다.
  • 금융 시스템의 위험성과 주거 양극화: 도쿄는 유연한 용도 지역제를 통해 저임금 노동자도 도심 거주가 가능한 시장을 유지하고 있으나, 서울은 전세 제도와 갭투자를 통한 높은 레버리지가 시장을 장악하고 있어 중산층조차 내 집 마련이 불가능한 수준의 부채와 가격 폭등에 시달리고 있다.
본 자료는 아시아 지역의 경제, 지형, 기업 및 지정학적 이슈를 심도 있게 다루는 지식 정보형 유튜브 채널인 ‘Behind Asia’가 2026년 3월 방송한 내용을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요즘 우리 사회의 큰 회두가 되고 있는 부동산 문제에 대해 우리나라와 이웃나라 일본의 제도와 상황을 비교한 자료입니다. 한 나라의 중요한 제도에는 그간의 역사와 배경이 반영되어 있기에, 어떤 제도가 절대적으로 좋고, 다른 제도는 절대적으로 나쁘다고 성급히 결론을 내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다만, 가끔 우리가 당연하고, 상식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이 다른 나라, 다른 사람들에게는 당연하지 않고, 상식이 아닌 경우들이 있습니다. 다른 나라의 사례를 공부함으로써 우리의 문제 개선을 위한 착안과 동기부여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소개 차원에서 공유합니다.

요약 (Summary)

도쿄의 집값은 왜 안정적인가, 그리고 서울은 왜 불가능해졌는가

(Why Tokyo is Cheap and Seoul is Impossible)

Behind Asia | 2026년 3월 10일 방영

서론: 도시 성공의 대가인가?

뉴욕, 런던, 시드니 등 세계 주요 경제 중심지들은 ‘주거비 위기’라는 공통된 문제를 겪고 있습니다. 흔히 우리는 도시가 안전하고 부유하며 매력적이라면 집값이 비싼 것은 당연한 경제 법칙이라고 믿어왔습니다. 하지만 동아시아의 두 메가시티인 도쿄와 서울은 이 고정관념을 완전히 깨뜨리는 서로 다른 결과를 보여줍니다.

도쿄의 기적: 거대하지만 안정적인 시장

도쿄는 세계 최대의 광역 도시권이자 경제 엔진입니다. 그러나 지난 20년간 도쿄의 임대 시장은 서구권에서는 불가능해 보이는 ‘안정성’을 유지해 왔습니다. 도쿄에서는 (비전문직) 서비스직 종사자도 룸메이트 없이 도심의 깨끗한 스튜디오 아파트(원룸)를 감당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서울의 현실: 불가능해진 시장

반면 서울은 도쿄의 쌍둥이 모델처럼 보이지만 상황은 정반대입니다. 서울의 부동산 시장은 현지인들에게 ‘불가능’ 그 자체로 묘사됩니다. 젊은 전문직 종사자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가계 부채에 시달리고 있으며, 아파트 가격은 맨해튼의 최고급 주거지와 맞먹는 수준까지 치솟았습니다.

일본의 선택: ‘방해할 권리’보다 ‘지을 권리’

2002년, 일본 정부는 조용하지만 강력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Zoning(용도지역제) 권한을 지방 자치단체나 지역 주민으로부터 빼앗아 중앙 정부로 가져온 것입니다. 이를 통해 기존 주택 소유주들이 자신의 자산 가치를 지키기 위해 새로운 개발을 막는 행위(NIMBY: Not In My Backyard)를 원천 차단했습니다.

한국의 선택: 자산 보호와 그린벨트

서울은 반대의 길을 택했습니다. 기존 주택 소유자의 자산을 보호하기 위해 개발을 제한하고, ‘그린벨트’라는 인위적인 희소성 속에 개발을 가두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도쿄는 집을 ‘소모품’처럼 다루어 문제를 해결했고, 서울은 집을 ‘금’처럼 취급하여 문제를 악화시켰습니다.

도쿄의 핵심: ‘당연한 권리(As-of-Right)’ 개발

일본의 성공 비결은 ‘당연한 권리(As-of-Right)’ 원칙입니다. 개발자가 정해진 법적 기준만 맞추면 지자체나 이웃 주민은 미관이나 교통, 지역 분위기 등을 이유로 건축을 거부할 수 없습니다. 중앙 정부가 권한을 쥐고 있기에 지역 이기주의로부터 자유롭고, 덕분에 도쿄는 끊임없이 낡은 건물을 허물고 더 높은 밀도의 주거지를 공급하는 역동적인 순환을 반복합니다.

유연한 용도 지역제: 섞여서 사는 도시

도쿄는 서구식의 엄격한 용도 분리 대신 ‘최대 소음/공해 기준’에 따른 유연한 Zoning을 사용합니다. 공업 지역 근처에도 주택을 지을 수 있고, 주거 지역 안에도 작은 상점이나 사무실이 들어설 수 있습니다. 이 ‘직주근접’ 환경은 자동차의 필요성을 줄이고, 주차장 대신 더 많은 집을 지을 수 있는 공간적 효율성을 극대화합니다.

서울의 제약: 그린벨트와 관료적 교착 상태

서울은 지형적으로 산에 둘러싸여 있을 뿐만 아니라, 1971년 도입된 ‘그린벨트’라는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혀 있습니다. 환경 보호라는 명분은 좋았으나, 이는 도시 확장을 억제하여 도심 내 지가를 폭등시켰습니다. 최근에는 중앙 정부와 서울시 간의 개발 방식 차이로 인한 관료적 갈등이 주택 공급을 더욱 지연시키고 있습니다.

주택에 대한 철학: 자동차 vs 주식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집을 바라보는 관점입니다.

  • 일본: 집은 자동차와 같은 소모품입니다. 지어지는 순간 가치가 하락하며, 20~30년이 지나면 건물 가치는 거의 0이 됩니다. 따라서 이웃에 높은 건물이 들어와도 내 자산 가치에 큰 타격이 없기에 개발에 관대합니다.
  • 한국: 집은 주식(자산)입니다. 한국 중산층 자산의 약 75%가 부동산에 묶여 있습니다. 만약 집값이 하락하면 중산층 전체가 파산할 위험이 있기에, 정부는 집값을 낮추겠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가격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 정치적 중독 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전세 제도와 갭투자: 거품의 연료

한국 특유의 전세 제도는 투기의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세입자의 보증금을 이용해 적은 돈으로 집을 늘리는 ‘갭투자’는 가격 상승기에는 수익을 극대화하지만, 하락기에는 세입자의 전 재산을 앗아가는 사회적 문제를 야기합니다. 2025년 기준 한국의 가계 부채는 GDP의 105%에 달하며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결론: 인간적 비용의 차이

도쿄에서는 최저임금 노동자도 도심 근처에 자신의 안식처를 마련할 수 있는 반면, 서울에서는 중산층의 상징인 삼성 엔지니어조차 평생 월급을 모아도 집을 사기 불가능한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서울의 주택 시장은 단순한 수급 문제를 넘어 갭투자와 부패, 그리고 자산 가치 보존을 위한 정치적 결탁이 얽힌 거대한 구조적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전체 번역본

거주의 물류: 도쿄는 해결하고 서울은 실패한 주택 위기

세계 주요 경제 허브인 뉴욕, 런던, 시드니, 밴쿠버, 파리 중 아무 곳이나 세계지도에 다트를 던져 보십시오. 당신은 예외 없이 ‘주거비’라는 단 하나의 압도적인 위기에 봉착한 도시에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위기를 도시의 성공에 따른 필연적인 부작용으로 치부하는 서사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위대한 도시에서 수요는 언제나 공급을 앞지르며, 공간은 한정되어 있고 땅은 고정된 자원이기에, 가격은 경제와 물리 법칙에 따라 성층권까지 치솟을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습니다. 이는 문명의 가장 거대한 상업 엔진에 탑승하기 위한 입장료처럼 여겨집니다. 도시가 안전하고 부유하며 매력적이라면, 정의상 ‘부담 불가능한 곳’이어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하지만 눈을 돌려 동아시아의 두 거대 고밀도 메가시티를 보면, 이러한 통념을 완전히 깨부수는 두 수도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일본해 건너편에는 도쿄가 있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대도시권이자 세계 4위 경제 대국 일본의 엔진입니다. 밀도는 높고 인구는 과밀하며, 부정할 수 없을 만큼 매력적인 도시입니다. 그런데도 지난 20년 동안 도쿄의 임대 시장은 서구권에서는 수학적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무언가를 달성했습니다. 바로 **’안정’**입니다. 도쿄에서는 서비스직 표준 임금을 받는 웨이터가 룸메이트 없이도 23구 내에 깨끗한 20㎡(약 6평) 원룸을 구할 수 있습니다. 런던이나 뉴욕에서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된 경제적 자활의 기적이 이곳에선 실재합니다.

물길 건너 다른 편에는 서울이 있습니다. 서류상으로 서울은 도쿄의 쌍둥이입니다. 대한민국 경제의 명실상부한 심장부이며, 수도권에 국가 인구의 절반이 거주합니다. 평지에 자리 잡은 도쿄와 달리 화강암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라는 지형적 난관이 있고, 재앙적인 출산율 급락과 고령화라는 공통된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그러나 서울은 완전히 다른 경제적 우주에 존재합니다. 현지인들에게 서울의 주택 시장은 단순히 ‘불가능’ 그 자체로 묘사됩니다. 가격은 경제학자들을 당혹게 할 정도로 폭등하고 있으며, 젊은 전문직 종사자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가계 부채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서울 중심부의 평균 아파트 가격은 이제 맨해튼의 가장 독점적인 동네들과 어깨를 나란히 합니다.

이 극명한 차이는 지형이나 수요의 문제가 아닙니다. 운의 문제도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권력’**의 문제입니다. 같은 근본적인 문제에 직면했을 때, 두 정부가 내린 완전히 다른 두 가지 선택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지대 추구인가, 개발의 권리인가

2002년, 일본 정부는 지역 주택 소유주들을 공포에 떨게 한 조용한 기술적 결정을 내렸습니다. ‘막을 권리’보다 **’지을 권리’**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용도 지역 설정(Zoning) 권한을 지역 주민으로부터 빼앗아 중앙 정부로 귀속시켰습니다. 반면, 해협 너머 서울은 정반대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기존 주택 소유자의 자산을 보호하는 길을 택했고, ‘그린벨트’라는 인위적 희소성의 장벽과 부의 증식을 주택 건설보다 우선시하는 정치 시스템 안에 개발 동력을 가두어 버렸습니다.

이것은 도쿄가 집을 ‘자동차’처럼 취급하여 주택 위기를 해결한 방법과, 서울이 집을 ‘황금’처럼 취급하여 위기를 악화시킨 방법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도쿄의 변칙: 현대 경제학을 거스르는 수치

도쿄가 보여주는 이례적인 규모를 이해하려면 먼저 숫자를 봐야 합니다. 도쿄의 핵심부인 23개 특별구에는 약 970만 명이 거주하며, 인구 밀도는 제곱마일당 약 41,000명에 달합니다. 이는 샌프란시스코 밀도의 두 배가 넘습니다. 이토록 밀집되고 부유한 도시라면 경제 이론상 임대료는 수직 상승해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도쿄의 임대료는 사실상 정체 상태였습니다. 시장이 너무나 안정적인 나머지 미세한 변동만으로도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할 정도입니다. 2024년 말, 공사비 상승으로 신축 유닛의 호가가 3~4% 오르기 시작했을 때도, 기존 세입자를 대상으로 한 공식 소비자 물가 지수는 거의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런던이나 뉴욕에서 이런 안정은 기적으로 간주되겠지만, 도쿄에서 신규 매물 가격의 소폭 상승이 뉴스가 된 것은 수십 년 만의 첫 유의미한 움직임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를 서비스직 노동자의 구매력으로 환산해 봅시다. 2024년 도쿄의 전업 웨이터는 연간 약 260만 엔에서 300만 엔(약 18,000~20,000달러)의 총소득을 올립니다. 다른 세계 1급 도시에서 이 연봉은 빈곤층으로 가는 티켓입니다. 먼 외곽에서 룸메이트와 살거나, 2시간의 고통스러운 통근을 감수하거나, 특수한 주거 보조금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도쿄에서 이 웨이터는 신주쿠나 나카노 같은 인기 있는 자치구의 도심 원룸을 월 7만 5천 엔에서 8만 5천 엔(약 500~600달러)에 구할 수 있습니다. 대궐은 아니겠지만, 20㎡의 공간이 민간 시장에 엄연히 존재합니다. 추첨도, 대기 명단도, 정부의 개입도 필요 없습니다.

서울의 현실: 폭주하는 시장

이제 대한해협 너머의 현실과 대조해 봅시다. 서울의 시장은 현재 ‘폭력적인 팽창’ 상태에 있습니다. 2025년 11월, 서울 아파트 매매가는 한 달 만에 1.72% 급등했습니다. 연간 상승률이 아니라 단 한 달 만의 수치입니다. 이는 18개월 연속 공격적인 상승을 기록한 것입니다. 최근 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 강남구의 평균 아파트 가격은 제곱미터당 무려 22,875달러(약 3,000만 원 이상)에 도달했습니다. 80㎡(약 24평) 남짓한 아파트 한 채가 약 170만 달러(약 23억 원)에 달하는 셈입니다. 서울 전체 평균을 봐도 90만 달러에 육박하며, 소득 대비 주거비 부담 면에서 악명 높은 런던과 뉴욕을 넘어 세계에서 가장 비싼 도시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 격차는 ‘삼성 표준’으로 가장 잘 설명됩니다. 한국에서 삼성맨이 된다는 것은 중산층 성취의 정점입니다. 2024년 삼성전자 엔지니어의 평균 연봉은 약 1억 2,800만 원(약 89,000달러)에 달했습니다. 도쿄 웨이터의 4배에 달하는 환상적인 소득이지만, 이 엔지니어조차 집을 사는 데 고전합니다. 서울 중간 가구의 소득 대비 대출 상환 비율(DTI)은 154%에 육박했습니다. 평균적인 가정은 이제 지붕 하나를 지키기 위해 연간 가처분 소득의 두 배에 달하는 빚을 지고 있습니다.

두 도시의 분기점: 1980년대 거품의 교훈

전후 비슷한 출발선에서 시작한 두 도시가 왜 이토록 극명하게 갈라졌을까요? 답을 찾으려면 도쿄가 지금의 서울보다 훨씬 더 비쌌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1980년대 후반 일본 부동산 시장의 광기는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일본의 기술이 세계를 지배하고 지가가 논리를 부정하던 ‘거품 경제’ 시대였습니다. 1989년 광풍의 정점 당시, 도쿄 중심부 황거(Imperial Palace) 아래 약 1.15㎢의 땅값이 미국 캘리포니아 전체 부동산 가치보다 높다는 계산이 나왔을 정도였습니다. 1990년대 초 거품이 꺼졌을 때, 그것은 단순한 가격 하락이 아니라 일본 경제의 파멸을 의미했습니다. ‘잃어버린 10년’이라 불리는 장기 침체와 디플레이션의 시작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재앙의 잿더미 속에서 일본 정부는 호황기에는 불가능했을 일을 저지를 정치적 자본을 얻었습니다. 바로 ‘하늘의 주인’이 누구인지에 대한 규칙을 완전히 새로 쓴 것입니다.

2000년대 초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은 건설을 통해 경제를 되살리기 위한 대대적인 규제 완화 캠페인을 주도했습니다. 새로운 시스템을 발명한 것이 아니라, 1950년부터 존재했던 ‘당연 권리(As-of-right)’ 체계를 무기화했습니다. 정부는 경제를 움직이는 유일한 길은 ‘짓는 것’이며, 이를 위해선 자신의 자산 가치를 지키기 위해 개발을 가로막는 님비(NIMBY: Not In My Backyard) 세력을 타파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핵심은 2002년의 **’도시재생특별조치법’**이었습니다. 이 법은 거버넌스 권력의 근본적인 재조정을 의미했습니다. 내각 직속의 도시재생본부를 설치하여 시나 구, 특히 지역 주민 협의회가 아닌 중앙 정부가 ‘도시 개발 우선 지역’을 지정할 권한을 갖게 했습니다.

대부분의 서구 국가와 한국에서는 토지 용도 지정 권한이 지자체에 있습니다. 그리고 지자체 의원은 이미 그곳에 살고 있는 주민들에 의해 선출됩니다. 기존 주민들은 주택 공급이 부족해져 자신들의 자산 가치가 오르기를 바라는 재무적 이해관계를 가집니다. 그들은 경관 심의, 환경 영향 평가, 일조권 검토 등을 도구 삼아 신축 아파트 건설을 지연시키거나 무산시킵니다.

일본의 2002년 개혁은 이 메커니즘을 완전히 우회했습니다. ‘당연 권리 개발(As-of-right development)’ 개념을 강화한 것입니다. 이는 개발자가 해당 구역의 객관적인 성문화 기준만 충족하면 지자체가 ‘반드시’ 승인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건물이 못생겼다고, 동네 분위기를 해친다고, 혹은 교통 체증이 우려된다는 주민들의 민원을 이유로 거부할 수 없습니다. 일조권 확보를 위한 엄격한 수치적 각도만 준수한다면 공동체의 의견으로 건물의 존재 자체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법전대로라면 지어지는 것입니다.

권한을 중앙화함으로써 일본은 님비의 거부권을 박탈했습니다. 국토교통성(MLIT)이라는 국가 기관에서 규칙을 정하기에 지역 주택 소유주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롭습니다. 중앙 부처의 관료는 세타가야구의 다나카 부인이 집에서 후지산이 안 보인다고 화를 내는 것보다 국가의 GDP와 주택 공급 총량에 더 신경을 씁니다. 결정권을 상단으로 이동시킴으로써 일본은 소수(기존 소유자)의 욕망보다 다수(미래의 세입자)의 필요가 우선되도록 보장했습니다.

그 결과 도쿄는 끊임없이 허물을 벗는 도시가 되었습니다. 도쿄의 경관은 결코 완성되지 않습니다. 파괴와 창조의 혼돈스러운 순환만이 있을 뿐입니다. 저밀도 단독주택이 6층 아파트로, 작은 아파트가 고층 타워로 끊임없이 대체됩니다. 동네의 성격을 보존하려는 감상주의는 없습니다. 도쿄의 성격 자체가 바로 ‘변화’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시스템은 수요에 실시간으로 대응하는 공급의 대폭발을 일으켰습니다.

용도 지역제의 철학: 분리인가, 혼합인가

승인의 속도는 방정식의 절반일 뿐입니다. 나머지 절반은 ‘무엇을 지을 수 있는가’입니다.

대부분의 서구 도시와 서울의 용도 지역제는 ‘유클리드형(Euclidean)’입니다. 이는 잠자는 곳(주거), 일하는 곳(상업), 만드는 곳(공업)을 엄격히 분리하는 방식입니다. 주거 지역에 동네 가게를 내는 것은 불법이 됩니다. 이러한 분리는 자동차와 거대한 도로, 주차장을 필요로 하며, 주택을 지을 수 있는 귀중한 땅을 잡아먹습니다.

일본은 **’최대 소음/공해 기준 용도제(Maximum nuisance zoning)’**라는 다른 철학을 사용합니다. ‘무엇을 해야 한다’고 규정하는 대신, ‘허용되는 최악의 행위’가 무엇인지를 알려줍니다. 일본 전역에는 단 13개의 용도 지역만 존재하며 이는 홋카이도부터 오키나와까지 표준화되어 있습니다.

계층적 구조의 최상단인 ‘제1종 저층 주거 전용 지역’조차도 소규모 상점이나 의원, 재택근무용 사무실을 허용합니다. 계층을 내려갈수록 규제는 급격히 풀리며, 단독주택 옆에 아파트가 들어서는 것을 막지 않습니다. 핵심은 ‘낙차(Cascade)’입니다. 어떤 구역이 백화점을 허용한다면, 그보다 덜 번잡한 모든 시설(아파트 포함)은 자동으로 허용됩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일본의 모든 용도 지역 중 단 한 곳을 제외하고는 어디에나 주택을 지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상업 지구에도 아파트를 지을 수 있고, 준공업 지역의 공장 옆에도 집을 지을 수 있습니다. 미국식 교외 주택지 같은 ‘배타적 단독주택 지구’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기본값으로서의 복합 용도’ 철학은 밀도의 선순환을 만듭니다. 주거지 안에 편의점과 사무실이 있으니 차가 필요 없습니다. 차가 필요 없으니 주차장을 지을 필요가 없고, 그 땅에 더 많은 집을 넣을 수 있습니다. 이 밀도가 세계에서 가장 효율적인 철도망을 지탱합니다. 2014년 인구 1,330만의 도쿄시는 142,417호의 주택 착공을 기록했습니다. 반면 인구가 3배나 더 많은 캘리포니아주(3,870만 명)의 전체 주택 허가는 83,657호에 불과했습니다. 도쿄라는 한 도시가 캘리포니아 전체보다 더 많은 집을 짓는 것입니다.

서울의 장벽: 그린벨트와 관료적 교착

도쿄가 연방화된 초유연 건설 기계를 만드는 동안, 서울은 정반대의 길을 걸었습니다. 서울은 제약으로 정의되는 도시입니다. 지형적으로는 산에 갇혀 있고, 제도적으로는 ‘그린벨트’라는 잉크로 쓴 성벽에 갇혀 있습니다.

1971년 박정희 정권이 도입한 개발제한구역(RDZ)은 표면적으로는 환경 보호와 도시 확산 방지, 대북 방어라는 고결한 목표를 가졌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린벨트는 주택 시장의 목을 죄는 올가미로 작용했습니다. 도시가 연속적으로 확장될 수 없기에 개발은 그린벨트를 건너뛰어 멀리 떨어진 신도시로 향해야 했습니다. 수백만 명의 시민이 도심의 직장으로 가기 위해 보존된 자연 구역을 가로질러 출퇴근하는 고통을 겪는 동안, 도심의 공급은 인위적으로 억제되었습니다. 이는 먼저 땅을 산 사람들을 부유하게 만들고 늦게 태어난 이들을 징벌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정부는 이를 해결하려 그린벨트 일부를 해제하기도 했지만, 경제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미시적 규제 완화는 도심 가격 하락에는 기여하지 못하고 오히려 투기 세력을 불러모아 착공 전부터 지가만 올리는 부작용을 낳았습니다. 2026년 1월, 서울시와 국토부 사이에 벌어진 공방은 이러한 교착 상태를 잘 보여줍니다. 정부는 유휴 부지에 6만 호를 공급하려 하지만, 서울시는 환경 비용과 재건축 규제 완화가 우선이라며 맞섰습니다. 일본의 ‘당연 권리’ 모델과는 정반대의 정치적 무기화된 행정입니다.

자산인가, 소모품인가: 집을 바라보는 철학적 결별

하지만 법과 지도는 껍데기일 뿐입니다. 도쿄와 서울의 결정적 차이는 주택을 대하는 사람들의 ‘영혼’에 있습니다.

도쿄에서 집은 **’자동차’**와 같습니다. 사용하면 낡고 결국 가치가 없어지는 소비재입니다. 일본에서는 건물이 완공되는 순간부터 가치가 하락합니다. 20년이 지나면 목조 주택의 가치는 0에 수렴하고, 30년이 지나면 콘크리트 아파트조차 장부상 가치를 대부분 상실합니다. 이는 최신 내진 설계 기준을 선호하는 ‘스크랩 앤 빌드’ 문화 때문이기도 합니다. 1981년 이전에 지어진 집은 빈티지가 아니라 허물어야 할 ‘지진 위험 요소’일 뿐입니다.

‘와비사비(덧없음의 미학)’라 불리는 이 사고방식은 숨겨진 경제적 선물인 **’자유’**를 선사했습니다. 내 집이 투자 수단이 아니기에 옆집에 더 높은 건물이 들어서든 동네 성격이 변하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내 부가 동네의 폐쇄성에 묶여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집은 금융 상품이 아니라 안식처라는 본연의 기능에 충실해집니다.

한국에서 집은 자동차가 아니라 **’주식’**입니다. 반드시 올라야만 하는 투기적 자산입니다. 한국 중산층에게 부동산은 부의 알파이자 오메가입니다. 2024년 기준 한국 가계 자산의 약 75%가 부동산에 쏠려 있으며, 상위 1%는 그 비중이 79.4%에 달합니다.

이것이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자산 계층의 함정’**입니다. 만약 서울의 집값이 40% 정도 조정되어 적정 수준으로 떨어진다면, 한국 중산층은 사실상 파산합니다. 노후 자금은 증발하고 대출금은 집값보다 많아지며(깡통주택), 소비 경제는 붕괴할 것입니다. 따라서 ‘부담 가능한 주택’은 정치적으로 불가능한 과제가 됩니다. 여야를 막론하고 유권자 순자산의 75%를 파괴하겠다는 공약으로는 선거에서 이길 수 없습니다. 정치권은 집값을 낮춘다고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고령층의 노후 자산을 지키기 위해 고점 유지를 갈망하는 ‘정치적 중독’ 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전세와 갭투자: 거품의 로켓 연료

이 중독은 ‘전세’라는 한국 특유의 제도로 인해 더욱 심화됩니다. 세입자가 집값의 50~80%를 무이자로 빌려주는 이 시스템은 저금리 시대에 젊은 층의 주거 사다리가 되었지만, 고금리와 가격 폭등기에는 투기의 로켓 연료가 되었습니다. 집주인은 세입자의 전세금을 지렛대 삼아 적은 돈으로 집을 늘려가는 ‘갭투자’에 나섭니다.

가격이 오를 때는 환상적이지만, 시장이 흔들리면 이 카드집은 무너집니다. 세입자에게 돌려줄 돈이 없어지고, 이는 최근 한국 사회를 뒤흔든 ‘전세 사기’와 비극으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시스템의 근본적인 부패를 드러냅니다. 전체 시장이 ‘가격은 영원히 오른다’는 가설 위에 세워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2025년 한국의 가계 부채는 GDP의 105%를 넘어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결론: 인간적인 도시의 조건

두 모델의 인간적 비용은 극명합니다. 도쿄에서는 파트타임 노동자도 도심 근처에 지붕 하나는 마련할 수 있습니다. 2025년 말 도쿄의 최저임금은 시간당 1,226엔으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습니다. 중앙부는 비싸더라도, 복합 용도의 기적 덕분에 전철로 20분만 가면 감당 가능한 집이 널려 있습니다.

반면 서울에서 중산층의 정점인 삼성 엔지니어는 자신의 높은 연봉이 집값 앞에서 무력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강남의 아파트를 사려면 연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25~30년을 모아야 합니다. 도쿄가 11~13년인 것에 비해 두 배가 넘는 고통입니다. 이제 서울의 평균적인 노동자에게 ‘내 집 마련’은 수학적으로 불가능한 개념이 되었습니다.

삼성 엔지니어는 단순한 고물가와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갭투자와 기득권의 부패가 얽힌 거대한 시스템과 싸우고 있습니다. 2025년, 집값을 잡겠다는 고위 정책 입안자가 정작 자신은 전세금을 끼고 판교에 고가 아파트를 샀다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 시민들의 배신감은 극에 달했습니다.

결국 이것은 집을 ‘사람이 사는 곳’으로 보느냐, ‘부의 증식 수단’으로 보느냐는 두 국가의 선택이 만든 결과입니다. 도쿄는 변화를 수용함으로써 안정을 얻었고, 서울은 자산을 지키려다 미래를 잃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거주의 물류’가 보여주는 냉혹한 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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